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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학연구 | 삼정문란과 조세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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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6월 30일
제 39권 2호
저자 : 서정우, 서정화

 우리는 오늘날도 과거의 역사속에서 볼 수 있었던 새로운 세제나 세정 문제에 부딪치고 살고 있다. ,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문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알게되고, 따라서 과거의 경험을 폭 넓게 우리의 경험으로 옮겨 올 수 있는 것이다.

 전정, 군정, 환곡의 이른바 삼정의 문란이라고 일컬어지는 조선 후기사회의 조세 수취체제의 문란은 조정재정을 빈곤에 빠뜨린 것은 물론이요, 농민들을 기아의 사경에 몰아넣어서 훗날 농민들의 조직적이고 집중적인 반발을 야기하였다.

 당시의 사회구조는 크게 비생산적인 소비생활을 하는 양반 등의 상류계층과 이들을 먹여 살리고 그들의 수탈착취의 대상이 되는 생산계층인 하류계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2대 계층은 서로 이해의 상통하는 바가 전혀 없이 상류계층은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하류계층은 그 착취압제의 목적물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조선 왕조 후기에는 귀족계층의 세력이 왕권을 압도하는 권력구조상의 변질이 야기됨에 따라 조세수납의 의의는 재정상의 요구에 있다기보다는 세도가나 관리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충당되고 마는 결과를 나타내어, 이것의 단적인 예가 바로 삼정의 문란이다.

 삼정문란으로 야기되어 1862년 봄에 시작된 민란은 3남 일대를 휩쓸고 잠시 잠잠한 듯 하다가 다시 발발하여 그 다음해인 1863년 까지도 계속 되었던 것이다. 결국 정부는 민란을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도 못한 채 1894년 동학의 난이라는 미증유의 농민봉기에 휘몰리게 되었다.

 어쨌든 조선왕조 후기 당시 조세부담이 지주층은 적게 부담하고 양민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조세를 부담하는 조세부담의 불균형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조세부담의 불균형 문제는 오늘날에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